일본 8.9의 대지진.. 日 공포의 쓰나미 강타~!

                       

미 해양대기국, 日쓰나미 한반도 도 영향권

 

일본에서  11일 오후 규모 8.8의 강진이 발생한 이후 태평양 연안국들이 잇따라

쓰나미 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해양대기국 서부 연안

알라스카 쓰나미 경보 센터에서 발표한 쓰나미 트래블 타임맵. 약 6시간 전후로

한반도 향권에 드는 것으로 표시돼 있다.

마을 덮치는 공포의 쓰나미

 

11일 오후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부근 해저에서 일어난 대규모 강진으로

미야기현 나토리시 마을에 쓰나미가 덮치고 있다.

 

 

계속 몰려오는 쓰나미

 

11일 오후 2시46분쯤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에서 최대 규모 8.9(미국지질조사국 발표)의

강진이 발생했다. 사진은 미야기현 센다이 해변으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모습.

/NHK via Reuters TV ⓒ로이터

 

 

일본 8.9 강진…센다이 공항 쓰나미 피해

 

11일 리히터 규모 8.9의 강진이 발생한

일본 북서부 지역의 센다이 공항의 쓰나미 피해 모습.

 

일본 강진 여파로 육지로 밀려드는 배들

 

11일 일본 동북부에 발생한 8.9 규모의 강진으로 많은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아오모리(靑森)현 하치노헤(八戶)시에 해일로 배들이 육지 쪽으로 밀려들고 있다.

<< NHK TV 촬영 >>

 

일본 강진..물에 휩쓸리는 차량들

 

11일 오후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부근 해저에서 일어난 대규모 강진으로

이와테현 가마이시 해안가를 덮친 해일로 차량들이 물에 휩쓸려가고 있다.

<< NHK 화면 촬영 >>

일본 대지진, 불타는 화학공장

 

옥상으로 대피한 사람들

 

11일 오후 2시46분쯤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에서 최대 규모 8.9(미국지질조사국 발표)의

강진이 발생했다. 사진은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 시(市)에서 쓰나미가 덮쳐 주변이 잠기고

건물 옥상으로 주민들이 대피한 모습을 동영상 화면으로 캡쳐한 사진.

NHK via Reuters TV ⓒ로이터

 

쓰나미가 덮치는 과정

 

11일 오후 2시46분쯤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에서 최대 규모 8.9(미국지질조사국 발표)의

강진이 발생했다. 사진은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 시(市)에서 쓰나미가 건물을 덮치는 모습

(왼쪽에서 오른쪽방향으로)을 동영상 화면으로 캡쳐한 사진 NHK via Reuters TV ⓒ로이터

 

갈 길을 잃은 배들

 

11일 일본 동북부에 발생한 8.9 규모의 강진으로 많은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이와테현 가마이시(市)에 해일로 배들이 육지 쪽으로 밀려들고 있다. ⓒ로이터

 

 

 

강진으로 산사태까지 발생

 

대피한 일본 시민들.. 공포에 떠는 일본 시민들.. 

 

일본 대지진, 불타는 화학공장

 

센다이를 덮친 쓰나미

 

 

공포의 지진 쓰나미…

 

파괴된 센다이 시내

 

쓰나미 덮친 센다이 공항

 

센다이 덮친 쓰나미로 화재

 

지진으로 갈라진 도로

 

해변 마을 덮친 쓰나미

 

폐허로 바뀐 해변 마을

 

 

 

 

 

비행기,자동차,쓰레기로 뒤범벅된 센다이공항

 

 

 

 

 

 

 

 

 

 

일본 대지진…마을 덮치는 공포의 쓰나미

 

 

거대한 소용돌이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중에 지은죄

 

1. 기득권 세력과 결탁을 거부한 죄

2. 언론과 결탁을 거부한 죄

3. 평균물가 성장률을 고작 3.0%로 막은 죄

4. 국민소득 2만불을 돌파시킨 죄

5. 경제규모를 1조 달러를 넘긴 죄

6. 주가를 2000 P 돌파하게 만든 죄

7. 수출 3천억불을 돌파한 죄

8. 참여정부 평균 물가 성장률이 OECD 회원국간 3위에 머문 죄

9. 2007년 4/4 분기 성장률이 OECD 1위한 죄

10. 외환을 2600 억 달러나 모아놓은 죄

11. 부도업체수를 3925개나 만든 죄( 김영삼-12701개, 김대중-9152개)

12. 국가 정보화 순위를 3위로 만든 죄

13. 국가 신용 등급을 A+로 만든 죄(FITCH)

14. 남북인적 왕래를 232886명이나 하게 한 죄(김영삼-1733명, 김대중-39583명)

15. 청와대가 당장악을 하지 않은 죄

16. 감히 부동산 값을 잡으려한 죄

17. 검찰, 경찰을 정원의 시녀로 삼지 아니한 죄

18. 감히 친일파 청산을 시도한 죄

19. 금권 선거를 단절시킨 죄

20. 복지 예산을 늘린 죄

21. 국방예산을 늘린 죄 

22. 단기 부양을 하지 않은 죄

23. 암환자 건장 보험 보장률을 70.1%에 이르게 한 죄

24. 문화 기반 시설을 1609개까지 늘린 죄(김영삼-705개, 김대중-1100개)

25. 국가 균형 발전을 시도한 죄

노무현은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

그리고 제일 큰 죄는 "당신이 떠난 후 국민들 마음에 진정한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었다"

라는 것을 국민들이 너무 늦게 깨닫게 했다는 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장면이 떠오릅니다.

평범한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행복하게 살수 있는 세상.....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The Saddest Thing - Melanie Safka
 


 

미국 내시빌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속 여주인공은

“내 노래가 한국에서도 그렇게 사랑 받고 있는지 몰랐다”며

즉석에서 슬픈 멜로디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거에요

(And the sad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청바지와 생맥주, 통기타로 대변됐던 ‘7080’ 세대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명곡

‘더 새디스트 싱(The Saddest Thing)’을 멜라니 사프카<사진>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었다.



‘새디스트 싱’ ‘레인 댄스(Rain Dance)’ ‘롱 롱 타임(Long Long Time)’으로 음악 다방과

심야 라디오를 통해 당시 청춘을 사로잡았던 ‘포크의 디바’..

 

멜라니 사프카는 1967년 첫 싱글 ‘아름다운 사람들(Beautiful People)을 녹음했으니,

올해로 데뷔 42년째다. 그동안 40여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8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지금도 유럽 투어를 비롯해 한 해 150여차례 무대에 서는, 왕성한 현역이다.

‘42년 롱런’의 비결을 묻자 멜라니 사프카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해졌다.
“수많은 팝 스타들이 화려한 광고와 조명 속에 인기를 얻었다가 금세 사라져버립니다.

음악이 산업의 논리에 갇혀버린 거지요. 하지만 홍보 문구와 번쩍거리는 사진만이 진실은 아니죠.”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연 소식과 소감을 올리며 팬들과 소통하는 그는

“음악인과 팬이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가수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크 가수’로 불리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멜라니 사프카는

“나는 나 자신을 ‘포크 가수’로만 여긴 적은 없다”고 말했다.

“1960년대 말 데뷔할 당시에 저는 긴 머리에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죠. 어머니는 재즈 가수였고

 저도 블루스와 록까지 모두 좋아했지만, 사람들은 제 모습만 보고 ‘여자 밥 딜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3년 전부터 사프카는 기타리스트이자 음반 프로듀서로 성장한 아들과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아들과 함께 곡을 만들고 연주하고 녹음하면서 가수로서 생명력을 다시 찾는 것 같다며 웃었다. - 웹 출처 -

 

    The Saddest Thing  

    And the sad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All the things that I have known
    Became my life, my very own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내가 알고 지내던 모든 것들이
    바로 나 자신의 삶이 되었어요




    But before you know you say good-bye
    Oh, good time good-bye,
    It's time to cry
    But I will not weep nor make a scene
    Just say, "Thank you, life, for having been"
    And the har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하지만, 당신이 안녕이란 말을 하기도 전에
    좋은 시절은 이별을 고하는군요
    울어야 하겠지만
    난 눈물도 흘리지 않고 법석을 떨지도 않겠어요
    그냥, "그동안 고마웠어요" 라고 말할거에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No I will not weep nor make a scene
    I'm gonna say, "Thank you, Life, for having been"
    And the loudest cry under the sun above
    Is to silent good-bye From the ones you love



    그래요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어요
    대신 "그동안 고마웠어요" 라고 말할거에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애절한 울음은
    사랑하는 사람의 소리없는 안녕이에요.

     

    And the sad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All the things that I have known
    Became my life, my very own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내가 알고 지내던 모든 것들이
    바로 나 자신의 삶이 되었어요




    But before you know you say good-bye
    Oh, good time good-bye,
    It's time to cry
    But I will not weep nor make a scene
    Just say, "Thank you, life, for having been"
    And the har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하지만, 당신이 안녕이란 말을 하기도 전에
    좋은 시절은 이별을 고하는군요
    울어야 하겠지만
    난 눈물도 흘리지 않고 법석을 떨지도 않겠어요
    그냥, "그동안 고마웠어요" 라고 말할거에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No I will not weep nor make a scene
    I'm gonna say, "Thank you, Life, for having been"
    And the loudest cry under the sun above
    Is to silent good-bye From the ones you love



    그래요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어요
    대신 "그동안 고마웠어요" 라고 말할거에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애절한 울음은
    사랑하는 사람의 소리없는 안녕이에요.

     

출처 : 정말 가시렵니까..
메모 :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대통령님 퇴임 후 미공개 사진



 

▲ 2008년 3월 13일. 사저 옆 자암골을 산책하던 중 권양숙 여사에게 억새의 종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대통령님

▲ 2008년 3월 13일. 사저 옆 자암골을 다정하게 산책중인 노무현 대통령님 내외

▲ 2008년 4월 6일. 봉하마을 회관에서 열린 조카손자 돌잔치에서 조카손자의 재롱을 보고 웃음 짓는 대통령님

▲ 2008년 4월 6일. 조카손자 돌잔치에서 조카손자를 안고 함박웃음을 짓는 대통령님

▲ 2008년 4월 6일. 조카손자 돌잔치에서 노건평 형님과 함께 아기를 안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통령님

▲ 2008년 5월 21일. 사저 옆 잔디밭에서 방문객 인사를 받던 중 사인요청을 받자 무릎을 꿇고 사인을 해주시고 계시는 대통령님

▲ 2008년 6월 5일. 전남 광양에 위치한 청매실 농원 나들이 도중 권 여사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

▲ 2008년 6월 5일. 전남 광양에 위치한 청매실 농원 나들이 도중 한옥 건축 현장을 둘러보고 계시는 대통령님 내외

▲ 2008년 7월 3일. 마을 주민들과 견학차 전남 함평 나비엑스포 공원 등을 둘러본 뒤 중간에 들른 하동의 한 식당에서 동행한 마을 주민 중 한 사람과 ‘러브샷’으로 소주를 함께 하는 모습

▲ 2008년 7월 3일. 마을 주민들과 견학차 전남 함평 나비엑스포 공원 등을 둘러본 뒤 중간에 들른 하동의 한 식당에서 동행한 마을 주민들과 소주잔을 나누는 모습

▲ 2008년 7월 3일. 마을 주민들과 견학차 전남 함평 나비엑스포 공원 등을 둘러본 뒤 중간에 들른 하동의 한 식당에서 동행한 마을 주민 중 한 사람과 ‘러브샷’으로 소주를 함께 하는 모습

▲ 2008년 7월 7일. 비서진들과 마을 청소를 하기 위해 목장갑을 끼며 일할 채비를 하는 대통령님

▲ 2008년 7월 7일. 목장갑을 끼고 삽을 든 채 마을 청소를 하고 계시는 대통령님

▲ 2008년 7월 7일. 마을 청소에서 이호철 전 민정수석과 함께 쓰레기를 줍는 대통령님

▲ 2008년 7월 7일. 마을 청소에서 허리를 깊숙이 숙여 열심히 쓰레기를 줍는 대통령님

▲ 2008년 7월 22일. 강원도 평창 두미울 농장에서 승마 체험을 하고 계시는 대통령님

▲ 2008년 7월 24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 리조트 방문시 비가 내리는 식당 앞에서 권 여사가 우산을 따로 펼치려 하자 함께 쓰자며 다정하게 권유하는 모습

▲ 2008년 7월 24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 리조트 방문시 비가 내리는 식당 앞에서 권 여사가 우산을 따로 펼치려 하자 다정하게 자신의 우산으로 끌어당기는 모습

▲ 2008년 8월 10일. 봉하를 찾은 옛 참모진들과 봉화산을 등반중인 대통령님(가운데는 권양숙 여사)

▲ 2008년 8월 13일. 생가마당에서 방문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계시는 대통령님. 손녀 서은양이 신기한 듯 관람객들을 보고 있다.

▲ 2008년 8월 16일. 사저 옆 잔디밭으로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기 위해 손녀 서은양과 같이 정답게 걸어가고 계시는 대통령님. 서은양의 모습이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 2008년 8월 16일. 사저 옆 잔디밭으로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기 위해 손녀와 같이 걸어가는 모습

▲ 2008년 8월 17일. 사저 옆 잔디밭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희망돼지를 정리하다 나온 돈”이라며 건넨 돈을 받아 펼쳐 보이며 지난 대선당시를 회고하듯 밝은 표정을 보이는 대통령님. 앞은 손녀 서은양

▲ 2008년 8월 21일. 사저 마당에서 열린 손자 백일잔치

▲ 2008년 8월 21일. 사저 마당에서 열린 손자 백일잔치. 내외분이 손자를 안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 2008년 8월 21일. 사저 마당에서 열린 손자 백일잔치에서 권 여사를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모습

▲ 2008년 10월 14일. 김해 가야팝스 공연 전에 한 식당에서 중학교 동창들과 저녁을 함께 하는 모습

▲ 2008년 10월 14일. 김해 ‘문화의 전당’에서 가야팝스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중인 대통령님. 대통령님은 귀향 이후 지역 문화공연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 2008년 10월 18일. 화포천 주변에 있는 농지를 둘러보다 만난 농민과 함께 앉아 얘기를 나누는 대통령님

▲ 2009년 1월 16일. 사저 사랑채에서 권 여사 생일 케익을 함께 자르는 내외분

▲ 2009년 1월 16일. 권 여사 생신을 맞아 직원들이 선물한 산딸기 와인을 열어보고 계시는 모습. 포장이 안 열리자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계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우리마음속에 부활한 바보 노무현 대통령 생전모습들ㅠㅠ
글쓴이 : 메렁 원글보기
메모 :



우리말에 죽음을 뜻하는 낱말은 무척 많습니다.
종교에서 따로 쓰는 낱말도 있고, 한자문화권에서 온 낱말도 있습니다
.


기세(棄世) : 세상을 버린다.
영면(永眠) : 영원히 잠들다는 뜻으로 죽음을 뜻하는 말. 유명한 사람의 죽음
영서(永逝) : 영원히 간는 뜻으로 죽음을 이름.
작고(作故) : 고인(故人, 옛날 사람)이 되었다.
잠매(潛寐) : 잠들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름.
승하(昇遐)/등하(登遐)/예척(禮陟)/척방(陟方) : 먼 곳에 올라가다.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던 말
입적(入寂) : 수도승의 죽음. = 귀적(歸寂) = 입멸(入滅) = 멸도(滅度)
병세(別世) : 세상을 하직한다는 말로 죽음을 뜻함.
기세(棄世) : 세상을 버린다는 죽음을 높이어 이르는 말
사거(死去) : 죽어서 세상을 떠남. 주로 저명한 외국인의 죽음에 사용되는 표현인데

                  서거로 대접하기에는 좀 과하고 사망으로 하기에는 미흡한 중간급 저명인물의 자연사에 따라붙음
장서(長逝) : 영영 가고 돌아오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름
별세(別世) : 윗사람이 세상을 떠남
사망(死亡) : 보통 사람의 죽음
서거(逝去) : 사거의 높임말. 자신보다 높은 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타계(他界) : 다른 세계, 곧 저승. 어른이나 귀인의 죽음

종교에서는 좀 다른 뜻을 담습니다.


환원(還元) : 천도교,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
입적(入寂) : 불교, 수도승의 죽음. 중이 죽는 것을 뜻함.

                  입멸(入滅), 귀적(歸寂), 적멸(寂滅), 원적(圓寂), 멸도(滅度) 등도 있음
열반(涅槃) : 불교,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석가모니를 비롯한 고승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소천(召天) : 개신교,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는 뜻. 개신교에서의 죽음
선종(善終) : 천주교,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는 뜻의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

이 밖에도,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崩御(붕어), 왕의 죽음을 뜻하는 昇遐(승하),

제후의 죽음을 뜻하는 薨去(훙거) 따위가 있으며,평 관리가 죽으면 卒(졸)이라 쓰며,

녹을 타지 않고 죽는다는 뜻으로 선비의 죽음은 不祿(불록)이라 합니다.
금실 좋은 아내가 죽으면 현악기의 줄이 끊어진다는 뜻으로 斷絃(단현)이라 하고,
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꽃잎처럼 흩어진다는 뜻으로 보통 군인의 전사는 散華(산화)라고 합니다.죄를 지은 사람의 죽음은 物故(물고)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숨지다, 죽다, 돌아가시다 따위가 있으며,'흙보탬'도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누구나 사람은 다 죽습니다.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래서 나보다 먼저 돌아가신 분을 우러러 죽음 앞에 경건함을 갖추고 두려움을 없애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은 이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고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훌륭한 일을 하고 가신 분이라면 높고 귀한 낱말로 우러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르는 낱말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은 다 같이 귀합니다.
우리 모두 내 삶을 아끼고 사랑합시다.
나중에 한 줌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잘 다듬어 곱게 쓸 수 있게 내 삶을 사랑합시다.


 

내 사랑이여! /강은혜
그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모든 문들이 열리는 소리 초여름의 이른 아침 첫 햇살을 받은 붉은 장미의 봉우리가 열리는 소리 들리시나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의 고동소리 희열의 기쁨은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도 남는 석영의 그 빛보다 더 붉게 내 맘속에 불타오릅니다. 그대는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왜 이제 왔나요. 그대는 몸 가득히 타오르는 장작 불처럼 뜨거운 환성으로 내게로 다가와 불새가 되어 내 가슴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네요. 그 춤 속에서 온몸이 환희의 도가니로 어디쯤 흘러가면 그대와 나 온전한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그곳은 은하수 흐르고 별빛이 영롱한 영원을 약속하는 아무도 열 수 없는 열쇠 우리만 열 수 있는 열쇠 땅끝까지라도 찻아서 세상의 폭풍이 접근할 수 없도록 외로움의 구멍이 꿇지 못하도록 그대가 나이고 내가 그대이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日 月 하나이듯이 올곳이 그대 옆에만 있고 싶습니다. 그대는 태양이면 나는 한 송이 장미가 되어 그대 가슴에 불꽃으로 피어나고 싶습니다.
흐르는곡-인연
출처 : 내 사랑이여 어디에 계시나여 끝내 손잡아 주지 못했던 ,,..............
글쓴이 : 소향 강은혜 원글보기
메모 :

추모글 쭉 읽어보다가 ...
다시 한번 우리들이 잘 알아야할것 같아서 뒤에있는글 앞으로 퍼다 놉니다.



아직도 노통이 뇌물받은줄 알고있는 네티즌님들아



노무현대통령님은 뇌물 안 받았습니다.

그렇게 쥐잡듯이 잡고도 검찰은 증거를 찾지못했습니다.
차용증 쓰고 빌린돈입니다.
그것도 노통 취임중 권양숙 여사께서 노통 모르게 빌린돈입니다.
한화로 당시환율 9억가량입니다.

님들아.
어느 정치인이 뇌물을 받을때 차용증쓰고 그것도
은행간 계좌이체로 증거남게 돈을 주고받습니까?

그런데 9억이라 말안하고 자꾸 달라로 표기하는 언론들은
그나마도 금액이 너무 작으니 많아보이라고 일부러 달라로 표시했습니다.
호화주택이니 어쩌구하는데 그런집아니구요,
네티즌들이 미국 그동네 사는 사람들이 집사진과 그동네 집값등까지
다 찍어서 올린 글 있는데요,
전혀 호화주택아니고, 그나마 당장계약금이 없어서 여사님이
박연차 회장에게 차용증쓰고 빌려서 보낸겁니다.
박연차 회장은 노통의 자녀들이 어릴적부터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자랐을정도로 각별한 사이였고,
노통이 30년전에 뭐하고 살던 사람이었는지 우리 국민들 다 아실테니
그때부터 박연차 회장이 유력정치인에게 득보겠다고
정치헌금 낸거 아닐거라는거는 삼척동자도 알수있는 일입니다.

노통이나 박연차를 구속못시키고 3주동안이나 질질끌면서
언론에 기사만 흘린이유도 아무증거를 못찾았기때문입니다.
현재 검찰이 안그래도 불구속기소하려고했다고 했죠?
세상에 전직대통령과 그 가족들을 증거도 없이 그 오랜시간동안
피를 말리고 신문마다 기사를 내서 모욕을 준겁니다.
애당초 친노세력 분열과 노통에 대한 도덕성훼손이
목적이었던 조사였습니다.

이 조사직전까지 노통이 세계청렴정치인상의 유력한 후보였다는거
아시는 분들 계시나요?
청렴정치인상까지 받게생겼지 봉하마을에 매일 국민들 관광가서
사진찍어 올리고 하니 배가 많이 아팠네요. 어떤분이.

그리고 노통 소환일을 4월 30일 재보선선거 하루 뒤로 잡아서
선거전에 활용한 면도 있죠.

그리고 시계, 그거 노통이 환갑선물로 받은겁니다.
환갑선물로 시계를 노통이 달라고 했습니까?
비싼 시계를 달라고 했습니까?
현대통령 부인은 과거에 입국할때 다이아반지 발가락에
숨겨가지고 들어오다 걸렸던거
그런거는 왜 기사 한줄도 안써요?
누가 더 우아합니까?
환갑때 선물받은 시계야 ,해외나가서
세금안내고 발가락에 숨겨들어오다 걸린 다이아반지야?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것은
1년에 1조 5천억원 가량의 대통령 자유재량의 유용비가
국가에서 지급됨에도 불구하고
단돈 9억이 없어서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대통령,
그 1조 5천억을 태풍왔을때 복구자금으로 전부 쓴 사람,
이런 사람이면
뇌물수수가 아니고 기부천사라고 불려야 마땅할텐데..
그 천사를 천사인척한 악마로 둔갑시켜
죽음으로 벼랑에서 떠다밀은 인간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아시죠?



언론이 그래서 무섭습니다.
연간 1조넘는 돈을 모두 불우이웃돕기에 다 쓰신 거에 대해
지난 5년동안 기사한줄 내준 언론사가 없었어요.
노통은 그렇게 늘 혼자였어요.
돌아가신분과 유족들의 최소한 명예라도 우리가 지켜드립시다.

아래 자료첨부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재임기간 대통령 특별교부금 6조원 사회에 환원
"노 대통령,특별교부금 폐지 검토 지시"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24일 행정자치부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특별교부금을 폐지해 보통교부금에 흡수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특별교부금은 원칙 없이 정치적 선심사업에

사용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특별교부금의 배분기준을 재검토해
자의적으로 사용될 여지가 없도록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도 특별교부금이 권력층의 쌈짓돈처럼 사용돼 왔다는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특별교부금 제도는 폐지되지 않고 규모와 운용방법등만 조금씩 변해왔다.
2003∼2004년에는 1조원이 넘던 특별교부금 규모가 2005년부터는 7000억원대로
축소됐고 사용용도도 재해대책비와 특정현안비로 단순화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특별교부금이 도로 개설 등 지역개발보다는 사회복지,
문화사업에 집중 지원되도록 했고 심사와 사후관리도 강화했다."



결국, 그 돈은 2003년 태풍 매미 피해가 났을때 그 돈으로 복구사업비로 사용했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자신은...단 한푼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통령 특별교부금 년간 1조2천억원..

재임기간 5년이면 총 6조원,,,,,,,,

그리고 대통령 이례 경이로운 6조원의 환원의 역사가 신문엔 한줄도 실리지 않았다는 점.....
지금 여러분은 언론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달으셔야 합니다

출처 : ★ 아직도 노통이 뇌물받은줄 알고있는 네티즌님들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글쓴이 : ▶◀피렌체 원글보기
메모 :

'16대 대통령' 명의의 이 서신은 기록물 유출을 둘러싼 경찰 수사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고 "나에게 책임을 묻되, 힘없는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도록 해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변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남 탓하지 않는 올곧은 성정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전화조차 안 받은 대통령" 질책

 

 노 전 대통령은 특히 "(이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 이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며 "내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습니다"며 이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국가기록 유출건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으나, 아무런 답신이 없었고 급기야 다시 전화를 했지만 통화조차 하지 못한 일을 공개하면서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습니까? 내 지시를 따랐던, 힘없는 사람들이 어떤 고초를 당할지 알 수 없는 마당이니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며 기록물 반환의 뜻을 밝혔다.

국가기록물유출 수사는 노 전 대통령 귀향 4개월 후 중앙일보의 첫 보도로 촉발된 이후 검찰의 온세통신 등 서버 관련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벌이는 초강도 조사를 거쳐 노 전 대통령측이 결국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반환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당시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 조사하기도 했었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님,
기록 사본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리를 가지고 다투어 보고 싶었습니다.
법리를 가지고 다투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람권을 보장 받기 위하여 협상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버티었습니다.

모두 나의 지시로 비롯된 일이니 설사 법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습니까?
내 지시를 따랐던, 힘없는 사람들이 어떤 고초를 당할지 알 수 없는 마당이니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모두 내가 지시해서 생겨난 일입니다. 나에게 책임을 묻되, 힘없는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먼저 꺼낸 말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끝에 답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한 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거듭 다짐으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했으나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저번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보도를 보고 비로소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때도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속실장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처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를 미루고 미루고 하더니 결국 '담당 수석이 설명 드릴 것이다'라는 부속실장의 전갈만 받았습니다.
우리 쪽 수석비서관을 했던 사람이 담당 수석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가 처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
이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가다듬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록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기록관장과 상의할 일이나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정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 것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해 놓은 말도 뒤집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의 드리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합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전직 대통령 문화에 맞는 방법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적절한 서비스가 될 때까지 기록 사본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나는 것 맞습니까?

지금 대통령 기록관에는 서비스 준비가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까?
언제 쯤 서비스가 될 것인지 한 번 확인해 보셨습니까?

내가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나의 국정 기록을 내가 보는 것이 왜 그렇게 못마땅한 것입니까?

공작에는 밝으나 정치를 모르는 참모들이 쓴 정치 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공상소설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에 달려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신지요?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를 '파탄'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섭니다.

하느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7월 16일
16대 대통령 노무현

 

출처 : 노무현대통령님께서 이명박에게 보낸서신
글쓴이 : 바람의 아들(건이) 원글보기
메모 :

>

 
출처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故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분이였다...
글쓴이 : 장인가구도우미[고형욱] 원글보기
메모 :

   

 
20.다윈

인간을 원숭이로 만들어 버린 사람.

그의 업적은 과학에만 한정된 것이아니다..

진화론 이후로 우리가 서로를, 세계를 바라보는 눈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19.당태종

제2의 중국을 만들어 놓은 사람.

이 사람때부터 중국이 한족만의 중국에서 벗어나

이민족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변신했다...

그리고 결과는 시간이 흐를 수록 비대해지는 초대형 다민족 제국, 중국


 
 
18.히틀러

유럽 제국의 자폭을 유도한 사람...17,18,19세기에 걸치면서

유럽이 가지고 있던 악과 비능률을 모조리 끌어않고 죽은,

어찌보면 희생양 같은 사람


 
 
17.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제2의 예수였다.

그가 남긴 경전은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던 율법이었다.

비록 지금 그의 제국은 망했지만, 여전히 그의 신도들은 세계에 다수 존재하며...

그가 철학과 역사관에 남긴 흔적은 여전히 선명하다


 
 
16.스탈린
태초에 마르크스가 있었고, 독생자 레닌이 났으나...
교황 스탈린이 모든것을 바꾸어 놓았다.

 
 
15.율리우스 카이사르

서양의 뿌리는 유럽, 유럽의 뿌리는 로마,

그리고 로마를 그린 사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를 거치면서 로마는 전혀 다른, 우리가 알고 있는그 '로마'가 되었다


 
 
14.나폴레옹

본인은 자신의 영광과 권력만 쫓았지만,

워낙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엄청난 까닭에

세계가 통째로 흔들려버렸다. 결과는 중세의 완전한 종결,그리고 근대의 시작


 
 
13.살라딘

이슬람 세계에는 번영과 통일을,

유럽 세계에는 교황 체제의 몰락과 르네상스-종교개혁을 유발시킨

이슬람의 영웅(후세인이 자기를 살라딘에 비교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민망하다..)


 
 
12.시황제

이 인간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두려운 이웃이 되버린 중국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중국에게 있어선 살아있었을땐 두려운 자였을태지만

이만큼 고마운 사람이 없었을거다.

한나라는 중화 사상, 중국 민족, 중국 제국의 시초


 
 
11.바울
맹자 없이 공자는 없었고,
플라톤 없이 소크라테스는 없었다. 예수에겐 바울이 있었다

 
 
10.아리스토텔레스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

학문의 세계에 있어서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아마도 이 자일 것이다.

남들은 한분야에서 이루기만 해도 역사에 영원히 남을만한 성과를

이 자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해놓고 갔다


 
 
9.알렉산더
서양이 동양을 만났다, 그리고 세계가 바뀌었다

 
 
8.징기스칸
몽골제국의 창시자(재위 1206∼1227).
1204년 내외 몽골을 통일하고, 1206년부터 서하(西夏),금(金),만주 등을 공격하고,

1219 ~ 1223년까지 중앙아시아 평정 이후 남 러시아를 정복하여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다.

정복한 땅은 아들들에게 분할해 중 후에 한국(汗國)을 이룩하게 하였고,

몽골 본토는 막내 아들에게 주기로 했다.

 그러나 1225년 원정에 참전하기를 거절한 서하를 응징하기 위해

현재의 중국의 간쑤 성의 류판 산에 있다가

1227년 8월 18일 이 불세출의 대정복자는 지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7.콜롬버스

서양 중심의 세계관, 자본주의,

 제국주의, 2번의 세계 대전, 종교 개혁, 산업 혁명,

그리고 미국까지...이 모든것의 전환점은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있다


 
 
6.채륜
불 이후로 가장 혁신적이었던 기술의 발전=종이


 
5.플라톤

'유일한 진리','절대적 가치'란 개념을 만들어 놓은 사람.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류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은게 플라톤...

(니체 제외.허나 아무리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하면 뭐하나..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4.석가모니

정치,경제,과학...허나 가장 강한 것은 종교.

우리나라 역사만 해도 실제론 단군 왕검+석가모니+공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공자

동아시아 문명권에 태어난 모든 남녀노소는

 이 사람의 유령과 죽을때까지 함께 해왔다.

공자를 죽이니 마니 하는 한국이나, 유교와 관계없다는 일본 이나,

공자를 반동이라고 욕하는 중국이나, 그리고 베트남, 몽골, 동남아시아 모두가

여전히 머리 속에, 가슴 속에 공자를 품고 산다


 
 
2.마호메트

인류 1/3의 인생을 결정지은,

1000년간 세계를 주도한 이슬람 세계의 영원한 힘의 원천이었던 사람.

지금도 보라. 그의 이름은 여전히 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구호로

수억의 사람들에게 힘을 떨치고 있다


 
 
1.예수 그리스도

기독교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나 있는가?

기독교 없는 서양은 서양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 서양적 가치관에 정복당해 있는 동양도

결코 지금의 동양이 아니었을 것이다.

33세에 죽은 목수의 삶이 전 인류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나폴레옹이나 마르크스 정도는 100번 죽었다 태어나도 못 따라갈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제공 : 佑 潭 / 曙 峰 )

그리고 17대 이명박 대통령 까지

 
   
이승만 (李承晩) 1875년 4월 18일 출생 (*사망)
전 정무직공무원/독립운동가재임기간 :
제1대~4대, 1948.07 ~ 1960.04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해방 후‘ 반공포로
석방과 대한해협에 평화선을 그어 일본선박이’ 우리영해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민족을 위한 민족의
삶을 위해 큰 정치를 하였다.
 
초대 대통령 선거는 이승만, 김구, 안재홍 세 입후보가 대결했다.
이승만이 90.9%로 6.6%에 그친 김구를 누르고 당선, 안재홍은 0.5%
 
2대 대선은 이승만, 조봉암, 이시영, 진흥우 총 4명,이승만이 74.6%로
11.4%에 그친 조봉암을 누르고 당선,이시영은 10.9%,신흥우는 3.1%

3대는 이승만과 조봉암 두명만이 나왔다.이승만이 30%에 그친 조봉암을
누르고 70%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4대 대선은 그 유명한 3.15 부정선거로 이승만이 조봉암에게
100%의 득표율로 당선...............
 
 
   
윤보선 (尹潽善) 1897년 8월 26일 출생 (*사망)
전 정무직공무원, 전 국회의원 재임기간 :
제 4대, 1960.08 ~ 1962.03  

4.19학생혁명으로 세운 제2공화국 내각책임의 명목상
국가원수였으며, 실권은 장면총리가 쥐고 있었다.
5.16군사혁명 후 중도퇴임 하였다.
 
*전임 이승만은 1960년 4.19일에 의거가 일어나 당선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야하게되어 윤보선이 1962년까지         
 말뿐인 대통령직을 수행...............
 
 
   
박정희 (朴正熙) 1917년 11월 14일 출생 (*사망)
전 정무직공무원, 전 군인 재임기간 :
제5~9대, 1963.12 ~ 1979.10 

5.16군사혁명으로 부패정권 부패 정치꾼을 몰아내고,
세계에서도 드믄 고도성장을 이룩하여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나라의 가난 전 국민적 가난을 벗게 하였으며, 
 
5대 대선은 박정희,윤보선,오재영,변영태,장이석 5명이 입후보했다.
 박정희가 46.6%로 윤보선의 45.1%를 박빙의 차이로누르고 당선되었다.
 오재영은 4.1% 변영태는 2.2% 장이석은 2.0% 입니다.

6대 대선은 박정희,윤보선,오재영,김준연,전진환,이세진 6명이 입후보 했다.
박정희가 51.5%로 40.9%에 그친 윤보선을 제치고 당선되었다.
오재영 2.4% 김준연 2.2% 전진한 2.1% 이세진 0.9%다.

7대 대선은 박정희, 김대중, 진복기, 박기출, 이종윤 5명
박정희가 53.2%로 45.3%를 차지한 김대중을 누르고 당선진복기 1.0%
박기출 0.4% 이종윤 0.1% 입니다.

8대부터 11대까지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게 된다.
8대에는 박정희가 99.9%로 당선되고,
9대도 역시 박정희가 99.8%의 득표로 당선..............
 
 
   
최규하 (崔圭夏) 1919년 7월 16일 출생
전 정무직공무원 재임기간 :
제 10대, 1979.12 ~ 1980.08

10대는 박정희의 피살로 최규하가 96.3%로 8개월간의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전두환 (全斗煥) 1931년 1월 18일 출생
전 정무직공무원, 전 군인
제 11~12대, 재임기간 : 1980.09 ~ 1988.02

1979년10월26일 김재규의 박정희대통령 살해사건당시 현장에 있던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조사하려던 중 12.12사태가 일어났다,
보안사 사령관이던 전두환은 정계의 실력자로 나서게 된다.
 
 11대는 전두환의 체육관 투표로 99.4%의 득표율로 당선
 12대는 전두환, 유치송, 김종철, 김의택 4명이 나왔다. 전두환이 90.1%로
 7.7%로 2위를 차지한 유치송을 누르고 당선...........
 
 
   
노태우 (盧泰愚)  1932년 12월 4일 출생
전 정무직공무원, 전 군인
제 13대, 재임기간 : 1988.02 ~ 1993.02 

육사11기 전두환과 동기로써 12.12사태의 주역의
한사람으로 전두환 집권 후 항상 2인자로 군림하며 8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김영삼의 분열로 대통령에 당선 됐다
 
13대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신정일 5명입니다.
 노태우가 36.6%인 역대 최저 특표율로 28.0%를 차지한 김영삼을 누르고
 당선, 김대중은 27.1% 김종필은 8.1% 신정일은 0.2% ...........
 
 
   
김영삼 (金泳三) 1927년 12월 20일 출생
전 정무직공무원, 전 국회의원
제 14대, 재임기간 : 1993.02 ~ 1998.02 

김영삼은 노태우 민정당,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자신의 민주당을
3당을 합당하여, 민자당으로 결성하고는 대표최고위원이 되어
노태우의 후임으로 92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14대는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박찬종, 이병호, 김옥선,
 백기완 총 7명 김영삼이 42.0%로 33.8%에 그친 김대중을 누르고 당선된다.
정주영 16.3% 박찬종 6.4% 이병호 0.1% 김옥선 0.4% 백기완 1.0%이다.....
 
 
   
김대중 (金大中) 1926년 1월 6일 출생
전 정무직공무원, 전 정치인
제 15대, 재임기간 : 1998.02 ~ 2003.02

김영삼 정권의 IMF 사태로 어부지리 대통령에 오른 김대중
햇볕을 거울삼아 국민의 세금 5억$을 김정일에 퍼 넘기고,
북한의 앞마당 평양에서 김정일 껴안기 쑈를 하였다.
 
15대는 이회창,김대중,이인제,권영길,허경영,김한식,신정일 7명
 김대중이 40.3%로 38.7%에 그친 이회창을 39만여 표차로 당선된다.
 이인제19.2%,권영길1.2%,허경영0.2%,김한식0.2% 신정일0.2%이다...
 
 
   
노무현 (盧武鉉) 1946년 8월 6일 출생
전 정무직공무원, 전 변호사
제 16대, 재임기간 : 2003.02 ~ 2008.2.

돌출행동과 돌출발언으로 국민을 불안케 한 세계사에서도
보기드믄 사고연발 대통령이었다. 취임 첫 발언이 선거법에 
저촉되어 선관위로부터 주의조치 통보, 야당의 맹 공세에
오기로 버티다. 결국 국회로 부터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6대 노무현이48.9%로46.59%에 그친 이회창을 누르고 당선되다.
 이회창은 2번 연속 낙선을 했다. 그 후유증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하었다.
 그러나 이회창은 17대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 3번의 낙방기록........

 
   
 
 

 
이명박(李明博) 1941년 12월19일 출생
정당인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4~15대 국회의원 제 32대
(민선3기) 서울특별시장,
통합신당 정동영에 531만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임기가 2008년 2월 25일 ~ 2013년 2월 24일 까지인
17대 李明博 대통령

제1대 태조 (1392~1398)

이자춘(환조)의 2남, 이성계 / 신의왕후한씨 외 부인2,

8남 5녀 / 6년 2개월
고려의 명장, 위화도회군(1388)으로 정권을 잡은뒤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개국함(1392)




제2대 정종 (1398~1400)

태조의 2남, 이방과 / 정안왕후김씨 외 부인7,

15남 8녀 / 2년 2개월
제1차 왕자의 난(1398, 무인정사) 직후

태조의 선위로 즉위함. 실권없음.




제3대 태종 (1400~1418)

태조의 5남, 이방원 / 원경왕후민씨 외 부인11,

12남 17녀 / 17년 10개월
정종의 선위로 즉위함, 조선 건국의 1등공신,

강력한 왕권의 안정에 주력함.




제4대 세종 (1418~1450)

태종의 3남, 이도 / 소헌왕후심씨 외 부인5,

18남 4녀 / 31년 6개월
훈민정음 창제(1443), 과학기술의 발달, 4군6진 개척,

우리나라 역사상 위대한 성군.




제5대 문종 (1450~1452)

세종의 1남, 이향 / 현덕왕후권씨 외 부인2,

1남 2녀 / 2년 3개월
현군의 자질을 타고 났으나 재위 2년만에 병사함.




제6대 단종 (1452~1455)

문종의 1남, 이홍위 / 정순왕후송씨 외 부인2,

자녀無 / 3년 2개월
숙부 수양대군(이유)에 왕위를 찬탈당하는 비운의 왕.




제7대 세조 (1455~1468)

세종의 2남, 이유 / 정희왕후윤씨 외 부인1,

4남 1녀 / 13년 3개월
계유정난(1453)으로 집권, 이후

조카 단종을 밀어내고 즉위함. 강력한 왕권을 구축.




제8대 예종 (1468~1469)

세조의 2남, 이광 / 장순왕후한씨 외 부인1,

2남 1녀 / 1년 2개월
병약하여 재위 1년여만에 병사함.




제9대 성종 (1469~1494)

세조의 1남인 의경세자(이장)의 2남, 이혈 /

공혜왕후한씨 외 부인11, 16남 12녀 / 25년 1개월
경국대전 반포, 활발한 편찬사업,

사림의 중용을 통한 정치안정, 태평성대를 구현함.




제10대 연산군 (1494~1506)

성종의 1남, 이융 / 폐비신씨 외 부인1,

4남 2녀 / 11년 9개월
무오,갑자사화를 일으켜 사림을 척결,

폐륜과 폭정을 행함. 중종반정(1506)으로 폐출됨.




제11대 중종 (1506~1544)

성종의 2남, 이역 / 단경왕후신씨 외 부인9,

9남 11녀 / 38년 2개월
중종반정(1506)으로 추대됨.

부왕 성종의 균형 정치를 표방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음.




제12대 인종 (1544~1545)

중종의 1남, 이호 / 인성왕후박씨 외 부인,

자녀無 / 9개월
현군의 자질을 타고 났으나, 재위 9개월만에 병사함.




제13대 명종 (1545~1567)

중종의 2남, 이환 / 인순왕후심씨, 1남 / 22년
총명한 자질의 소유자였으나,

모후 문정왕후윤씨의 악정에 휘둘린 눈물의 왕.




제14대 선조 (1567~1608)

중종의 9남인 덕흥대원군(이초)의 3남, 이균 /

의인왕후박씨 외 부인7, 14남 11녀 / 40년 7개월
명종대의 혼란은 극복하였으나,

붕당을 막지 못하고, 임진왜란(1592)을 당한 우유부단한 왕.




제15대 광해군 (1608~1623)

선조의 2남, 이혼 / 폐비유씨 외 부인1,

1남 1녀 / 15년 1개월
외교적 안목이 탁월했으나,

지나친 정적제거로 명분을 잃고 인조반정(1623)으로 폐출당함.




제16대 인조 (1623~1649)

선조의 5남인 정원군(이부)의 1남, 이종 /

인렬왕후한씨 외 부인2, 6남 1녀 / 26년 2개월
인조반정(1623)으로 즉위함.

정묘, 병자호란후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수난의 왕.




제17대 효종 (1649~1659)

인조의 2남, 이호 / 인선왕후장씨 외 부인1,

1남 7녀 / 10년
북벌론으로 병자국치를 씼고자 했던 왕.




제18대 현종 (1659~1674)

효종의 1남, 이연 / 명성왕후김씨,

1남 3녀 / 15년 3개월
예송논쟁에 휘말림.




제19대 숙종 (1674~1720)

현종의 1남, 이순 / 인경왕후김씨 외 부인5,

3남 6녀 / 45년 10개월
환국정치로 강력한 왕권 구축.

수많은 옥사를 유발함.




제20대 경종 (1720~1724)

숙종의 1남, 이윤 / 단의왕후심씨 외 부인1,

자녀無 / 4년 2개월
붕당이 극심함, 줄곧 병상에 있다가 재위 4년만에 병사함.




제21대 영조 (1724~1776)

숙종의 2남, 이금 / 정성왕후서씨 외 부인5,

2남 7녀 / 51년 7개월
탕평책을 추진했으나 별성과는 없었음,

아들 사도세자를 죽임, 52년 재위로 조선왕조 1위.




제22대 정조 (1776~1800)

영조의 2남인 사도세자(이선)의 1남, 이산 /

효의왕후김씨 외 부인2, 2남 1녀 / 24년 3개월
문화정치, 실학의 융성, 활발한 편찬사업,

조선조 제2의 중흥기를 이룩함.




제23대 순조 (1800~1834)

정조의 2남, 이공 / 순원왕후김씨 외 부인2,

1남 5녀 / 34년 3개월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시작, 각종 민란의 발생,

수재와 흉년빈번, 천주교박해.




제24대 헌종 (1834~1849)

순조의 1남인 효명세자(이영)의 1남, 이환 /

효현왕후김씨 외 부인1, 1녀 / 14년 7개월
삼정의 문란, 민생고의 극심.

최연소로 등극(8세) 했으나 일찍 병사함.




제25대 철종 (1849~1863)

사도세자(이선)의 2남 은언군(이인)의

3남인 전계대원군(이광)의 3남, 이원범 /
철인왕후김씨 외 부인7, 1녀 / 14년 6개월
농부에서 제왕이 됨.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지속됨.




제26대 고종 (1863~1907)

사도세자(이선)의 3남

은신군(이진)의 1남인 남연군(이구)의 4남인

흥선대원군(이하응)의 2남,
이명복 / 명성황후민씨 외 부인6, 6남 1녀 / 43년 7개월
흥선대원군의 섭정,

구한말의 혼란기를 보냄, 대한제국을 선포,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




제27대 순종 (1907~1910)

고종의 1남, 이척 / 순명효황후민씨 외 부인1,

자녀無 / 3년 1개월
조선의 마지막 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