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사진들입니다.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자료로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필자 주>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2. 북한군 포로.ⓒ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그동안 성원해 주시고 애독해 주신 네티즌 여러분께 깊이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제가 NARA에 갈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권중희 선생님, 그리고 사진 자료를 입수하는데 도와주신 재미동포 자원봉사자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곁에서 원문을 번역해 주신 박유종 선생님, 길잡이가 되신 이도영 박사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스캐너를 빌려준 동포 주태상씨 그리고 이선옥씨, 권헌열씨, 정희수씨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많은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기에 이 자료를 독자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입수한 사진 자료는 모두 480여 매이나 그중에서 중복되거나 비슷한 것, 그리고 사진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제외한 자료를 30회에 걸쳐 모두 공개하였습니다.

박도 기자는 서울에서 33년간의 교단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강원도 산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 회원으로 작품집에는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와 산문집 <샘물 같은 사람> <아버지의 목소리> <일본기행> 항일유적답사기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한국전쟁 사진첩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이 있다.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2. 금강철교ⓒ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8. 3. 뙤약볕 속에 전선으로 가는 국군 행렬ⓒ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남 진주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원문은 포로로 되어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2. 16. 흥남부두.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2004 미국국립문서보관기록소



▲ 1950. 12. 18. 흥남에서 묵호(동해)로 후퇴한 후 수송선에서 내리는 병사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텅 빈 흥남부두ⓒ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불타는 흥남항ⓒ2004 박도



?1950. 12. 26. 전차도 후퇴대열에. 흥남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고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2. 27.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 3. 1·4 후퇴를 앞두고 불타고 있는 서울 시가지ⓒ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1. 5. 1.4 후퇴 피난민 행렬ⓒ2004 박도



▲ 1951. 1. 5.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2004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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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1.4. 한강나루터에서 건너야 할 강을 바라보는 피난민 아이들ⓒ2004 박도



▲ 1951. 1. 4. 한강 임시 부교ⓒ2004 박도



▲ 1950. 12. 29. 양평 , 생포된 포로들ⓒ2004 박도



▲ 1950. 11. 29. 최전방의 간호사들ⓒ2004 박도



▲ 1951. 1. 6.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2004 박도



▲ 1951. 1. 5. 한미 합작의 한국군 병사 장비. 신발, 겉옷 , 모자 : 한국제. 코트, 소총, 탄환 : 미제ⓒ2004 박도



▲ 1951. 1. 5.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미군 부대에 몰려온 한국의 노무자들ⓒ2004 박도



▲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2004 박도



▲ 1950. 12. 1.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를 등록하려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1. 16.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교육을 받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1. 4.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PRI(사격술 예비훈련)을 받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5.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한 북한의 어느 지역(평산)에서 주민들이 지역 대표와 치안대장을 뽑고 있다. 그들 대표는 무슨 색깔의 완장을 찼을까?ⓒ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 남하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22. 전쟁에는 2등이 없다. 포로가 되는 순간부터 치욕이다. 미군들이 생포된 포로의 온 몸을 수색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20. 미군이 인민군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수색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17. 인천.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후 함포사격 포화에 무너지고 그을린 인천시가지ⓒ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18.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전함에서 병사들이 하선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5. 28. 38선 부근 6마일 남쪽 마을에서 탱크의 포화소리에 귀를 막는 소년들. 이들의 누더기 바지 차림이 그 무렵 소년들의 대표적 옷차림이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8. 애송이 북한군 소년 포로를 미군 포로심문관이 취조하고 있다. 곁에는 통역 겸 여비서라고 표기돼 있다. 엄마 젖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2004 NARA



▲ 1950. 8. 18.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신상명세서를 만들고 있다ⓒ2004 NARA



▲ 1950. 8. 18. 포로수용소 전경ⓒ2004 NARA



▲ 1950. 8. 18. 포로수용소 천막 안에서 밥을 먹고 있다ⓒ2004 NARA



▲ 1950. 8. 18. 포로들이 줄을 서서 밥을 타고 있다ⓒ2004 NARA



▲ 1950. 8. 11. 그해 여름 피난민들의 움막. 필자도 이런 곳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2004 NARA



▲ 1950. 8. 13. 잠깐의 휴식시간에 LMG(기관총) 병기 손질을 하고 있다ⓒ2004 NARA



▲ 1950. 8. 13. 박격포 사격 훈련ⓒ2004 NARA



▲ 1950. 8. 15. 피난민 행렬ⓒ2004 NARA



▲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피아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2004 NARA



▲ 1950. 8. 24. 모정 무한, 젖을 먹이는 어머니ⓒ2004 NARA



▲ 1950. 8. 23.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앞에 붙들고... 고단한 피난 행렬.ⓒ2004 NARA



▲ 1950. 8. 18. 낙동강 전선에서 쌕쌕들이 폭격을 가하고 있다.ⓒ2004 NARA



▲ 1950. 8. 25. 폭격에 불타고 기총소사에 죽어가다ⓒ2004 NARA



▲ 1950. 8. 15. 마산 부근, 피난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2004 NARA



▲ 1950. 8. 1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마을ⓒ2004 NARA



▲ 1950. 8. 22. 불을 뿜는 전함ⓒ2004 NARA



▲ 쌕쌕이의 융단 폭격으로 초토가 된 경북 왜관ⓒ2004 NARA



▲ 1951. 1. 2.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2004 NARA



▲ 1950. 8. 포항 부근의 한 마을이 포화에 불타고 있다ⓒ2004 NARA



▲ 1950.9. 15. 인천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2004 NARA



▲ 1950. 9. 15. 인천 월미도로 상륙하는 함정들ⓒ2004 박도



▲ 1950. 9. 16. 인천에 상륙한 후 시가지를 활보하는 유엔군들ⓒ2004 NARA



▲ 1950. 9. 16. 인천부두로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2004 NARA



▲ 1950. 9. 16. 인천시가지에서 생포한 북한군들ⓒ2004 NARA



▲ 1950. 9. 16. 월미도에 나뒹구는 북한군 시신들ⓒ2004 NARA



▲ 1950. 9. 15. 인천에서 생포한 포로들ⓒ2004 NARA



▲ 1950. 9. 17. 서울 진격 작전ⓒ2004 NARA



▲ 1950. 9. 23.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둔 노량진에서 바라본 끊어진 한강 철교ⓒ2004 NARA



▲ 1950. 9. 25. 한강 도하 작전ⓒ2004 NARA



▲ 1950. 9. 29. 미군 전차가 서울 시내 중심가로 들어오고 있다.ⓒ2004 NARA



▲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는 또 다른 깃발을 흔들어야 했던 불쌍한 백성들ⓒ2004 NARA



▲ 1950. 10. 1. 서울 시청 일대ⓒ2004 NARA



▲ 1950. 10. 1. 소공동 일대ⓒ2004 NARA



▲ 1950. 10. 1.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2004 NARA



▲ 1950. 10. 1.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2004 NARA



▲ 1950. 10. 1. 반도호텔에서 바라본 을지로ⓒ2004 NARA



▲ 1950. 9. 30. 서울의 아침, 폐허가 된 시가지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2004 NARA



▲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직전의 중앙청 홀,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 ⓒ2004 NARA



▲ 1950. 9. 29. 유엔 깃발로 펄럭이는 중앙청 광장, 서울 탈환 환영대회가 끝난 직후 바로 옆 건물이 불타고 있다ⓒ2004 NARA



▲ 1945. 9. 9.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2004 NARA



▲ 1945. 9. 9. 미군들이 서울시민들의 환영 인파에 싸여 있다ⓒ2004 NARA



▲ 1945. 9. 9. 조선총독이 총독부 홀에서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2004 NARA



▲ 1945. 10. 12. 부산항 부두에서 일본군인들이 본국으로 떠나기 전 미군들에게 철저하게 검색을 당하고 있다ⓒ2004 NARA



▲ 1946. 1. 16.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측 대표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2004 NARA



▲ 1947. 5. 25. 개성 인근의 38선 미군 초소, 그때만 해도 요란한 철조망은 없었다ⓒ2004 NARA



▲ 1948. 5. 8. 다가올 5. 10 총선거를 앞두고 경찰들이 선거 방해를 염려하여 죽창을 거둬들이고 있다ⓒ2004 NARA



▲ 1948. 5. 10.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5. 10 총선거에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2004 NARA



▲ 1948. 5. 10. 선거 방해 사범으로 체포된 5인, 맨 왼쪽 여인은 장택상을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고 기록돼 있다ⓒ2004 NARA



▲ 1948. 5. 31. 국회 개원식 날 국회 의사당 앞에서 서북청년단들이 소련 철수를 주장하는 데모를 하고 있다ⓒ2004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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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
글쓴이 : 시나브로 원글보기
메모 :

 

와우 아파트 붕괴(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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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4월 8일에 일어났던 마포구 창천동의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은 바로 서울특별시가 주관해서


지은 아파트의 갑작스러운 붕괴였고

,
33명의 사망자와 39명의 부상자를 낸 불상사였다.

당시 서울특별시장으로‘불도저’ 라는 별명을 지녔던 김현옥이


전시효과를 위해 자랑삼아 지었던 아파트의 붕괴였기에


그 충격과 파장은 클수밖에 없었다.

 

대연각 호텔 화재(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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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 충무로 대연각호텔 화재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낸 화재이다.

168명이 사망하였으며 68명이 부상 재산 피해는


당시 소방서 추정으로 8억 3820만원 이었다.

1층에서 폭발한 프로판 가스통에서 시작한 불길은


21층까지 번져 서울 시내 전 소방관과 미군의 도움과


대통령전용 헬기와 육군과 공군의 헬기까지 지원받았지만

10시간이 지난후에야 겨우 불길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구조를 요청하며 뜨거운 화염과 싸우는 투숙객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도되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이리역 폭파 (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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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1월22일 전북 이리시 이리역에서 화약을 운반중인 열차가

 

수송원의 실수로 폭발한 사건

.
59명이 사망하고 1백30여명이 중경상

KAL기 폭파(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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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근해에서

 

북한공작원에 의하여 공중폭파된 사건.

한국승객 93명과 외국승객 2명,그리고 승무원 20명 등 115명이 전원 사망


서해 훼리호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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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10일 서해훼리호의 침몰로 292명 사망

성수대교 붕괴(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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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9일 압구정동과 성수동의 성수교를 잇는


성수대교가 무너져내리는 사고가 발생

성수대교는 1979년 개통하였으나 부실시공이 문제가 되었다


사망 32명, 부상 17명 (등교길이라 무학여고생들 피해가 많았음)

삼풍백화점 붕괴(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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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1995년 6월 29일

 

오후 6시경에 붕괴된 사고.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라는 인명피해는 8.15광복 이후


가장 큰 인적 재해로 기록되었으며 재산상의 손해도 매우 컸다.

지상 5층, 지하 4층, 그리고 옥상의 부대시설로 이루어진 삼풍백화점은


1995년 말에 완공하였으나 설계,시공,유지관리의 잘못에 기인된 참사였다.

대구지하철 가스폭발(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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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지역 동남편 대구백화점 상인점 신축공사를 위한 그라우팅 천공작업중

 
100mm 도시가스관이 파손되어 유출된 가스가

 

하수관을 통하여지하철공사장으로 유입

 

상당시간 체류후에 원인미상의 화인으로 점화 폭발


220명의 사상자 등 600여 억원의 피해

대한항공기 추락(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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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6일 새벽 2시 30분 CNN을 통해 전해진

 

대한항공기 747여객기 괌 추락사고. 승객 2백54명중 2백29명이 사망


(신원 미확인 1백2명 포함)하고 25명 이 부상했다.

대구지하철 참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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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광역시 중구 성내동 중앙로역 구내에서 50대 남자가


플라스틱통에 들어 있는 휘발유에 불을 붙인 뒤, 바닥에 던져


12량의 지하철 객차를 뼈대만 남긴 채 모두 태워버린 대형참사로,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에 일어났다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당했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국보 1호 "숭례문"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 
 

네티즌 김영훈씨가 문화관광부에 올린 글 전문

존경하는 장관님

 

글쓴이 김영훈 날짜 2007/02/24

 

친애하는 관리자님. 이글을 장관님이 직접보시리라 믿지않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가 가장많은곳이 어디인줄 아십니까?

 

저는 경복궁을 29번이나 탐사한 22살 청년이고

 

지금은 중국에서유학을 하고있습니다.

 

첫번째 알려드릴것은 숭례분근처에서 노숙자들이 대화하는것을 들

 

었는데 "확 불질러버려" 라고 말하는것을 들었습니다

.

숭례문에 경비도 없고 너무 경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숭례문 개방은 바람직했으나. 너무 경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관리자님 탁상위에서만 이글에 답하지 마시고

 

실무자로서, 이 나라를 사랑하시는 분으로서 한번 현장에

 

나가보시죠. 한숨만 나옵니다

.

저의 일본인 친구들은 이 나라가 볼게 없다고 하며

 

정말 불쌍하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그말이 맞습니다.

 

체계화되지 않은 불편한 관광지 통로를 가진 서울은

 

더욱 체계화된관광도보환경이 필요하고 걷는 와중에도

 

많은 볼거리를 필요로 합니다

.

존경하는 관리자님 성의있게 봐주십시오

.

 저는 눈물로써 호소합니다

.

이번 경복궁 광화문 복원에 큰 찬사를 보냅니다

 

그런데 광화문역에서 내려 경복궁으로 향할때

 

너무 볼거리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의 숭례문 경비 체제와 조만간 잘못하면 누가 방화할수있습니다.

 

관리자님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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